스페인은 왜 이런 지경이 된 걸까요? 첫 번째 원인은 집 자체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입니다. 2021~2025년 누적 주택 부족 물량을 75만 채로 추산했는데, 이는 전체 가구의 3.7%에 달하는 규모로 같은 기간 이탈리아(40만 채)나 프랑스(수급이 거의 맞았던 곳)와 비교하면 격차가 뚜렷합니다. 지난해만 봐도 새로 생긴 가구는 24만 가구인데 새로 지어진 집은 9만 2천 채에 불과했습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관광 임대가 전체 임대 시장의 약 10%를 차지하고, 집주인들이 수익이 더 짭짤한 단기 임대로 집을 돌리면서 현지인이 밀려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24년 6월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같은 관광 도시의 월세는 1년 새 18% 치솟았고, 바르셀로나 시장은 2028년까지 관광용 임대 아파트 1만 채 넘기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퇴거 세 건 중 두 건 월세 때문이라는 잔인한 현실이죠.
스페인 정부는 2027년 말까지 정부 기준 임대료보다 비싼 집은 월세를 올릴 수 없게 하고, 나머지도 합의가 없으면 인상률을 2%로 제한했습니다. 취약계층 세입자는 2030년 말까지 퇴거를 미루고, 첫 집 구매자에게는 집값의 최대 20%(5만 유로)를 무이자로 빌려주며 상환은 최대 30년까지 늦춰 줍니다. 대형 임대인에게는 세금을 무겁게 물리고, 자발적으로 월세를 내려주는 집주인에게는 임대소득 과세를 최대 100%까지 깎아 주는 구조입니다.
그 돈은 결국 똑같은 집 몇 개를 놓고 서로 가격만 높이며 출혈 경쟁을 하는데 쓰일게 뻔합니다.
베를린은 2020년 2월 월세 상한제를 시행했는데, 규제 대상 주택 월세는 약 11% 낮아진 반면 시장에 나온 임대 매물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이 상한제는 2021년 4월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가 무효로 판단했고, 그 뒤 2021년 9월 주민투표에서는 대형 부동산 기업 아파트를 공공 소유로 몰수하는 안이 57.6% 찬성을 받았습니다.
과연이 스페인의 난리가 바다 건너 먼 남의 나라의 일일까요? 우리나라도 불과 6년 전에 이와 완벽하게 판박이 법을 만들었죠.
2020년 도입된 임대차법은 세입자가 요구하면 최대 4년 거주를 보장하고 인상률을 5% 안으로 묶었지만,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값은 2020년 7월 4억 9,922만 원에서 2021년 7월 6억 3,483만 원으로 1억 3천만 원 넘게 올랐습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도 이 법이 전세 매물 감소와 신규 계약 시 가격 상승, 분쟁 증가 같은 시장 불안을 부추였다는 지적이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결국 집값을 때려잡겠다고 세운 엄격한 규제에 오래 들어서만 예외 조항이 두 번이나 얼기설기 붙어 버린 겁니다.
스페인과 한국 물론 세부적인 시장 구조는 다릅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았습니다.
묶어둔 통제 기간이 끝나 버리면 세입자들은 그동안 용수철처럼 짓눌려 있던 시세폭등을 한꺼번에 맨몸으로 감당해야만 하죠.
법령의 의회에서 부결되자마자 국가 전체 조기 총선이라는 어마어마한 나비 효과를 불러왔습니다. 민심이 흉흉하고 다급할수록 정치권은 가장 빠르게 눈에 띄는 달콤한 대책을 고르고 그 막대한 비용이 적힌 청구서는 결국 몇 년 뒤 고스란히 세입자들의 몫시 됩니다. 한국의 월세 시장 역시 지금 바로 그 운명의 길목 한가운데서 있는데요.